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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의 비밀 기자 피라미드(Giza Pyrami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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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카이로에서 마지막 일정으로 피라미드와 박물관을 관람하는 계획이 세워져 있다. 아침부터 모래바람이 불어 불쾌한데다 교통마저 혼잡하여 무질서의 카이로 시를 통과한다. 이곳에는 4거리에 교통신호등이 없어 먼저 들어서는 마차 또는 사람이나 자동차가 왕이다. 선진국이 될려면 이것부터 고처야 될 것같다.


 피라미드로 가는 도중 안내자는 한국인이 잊어서는 않된다는 카이로 회담 장소로 쓰였던 메나하우스 호텔을 안내한다. 카이로 회담이라면 제2차 세계대전 중 1943년 말 연합국 중에서 미국의 루즈벨트와 영국의 처칠, 그리고 중국의 장제스가 수뇌 회담을 개최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특기할 것은 이 회담에서 일제의 압제 속에 있던 우리나라의 독립문제가 최초로 거론된 역사적인 장소라는 점인 것이다. 이곳에는 카이로선언 기념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집트 기자에 가면 세상에 다시없을 거대한 피라미드가 서광을 가린 채 우뚝 솟아있다. 4천년 이상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 건조물로 이름을 날린 이 피라미드는 고대 7대불가사의 하나로 통하며 지금까지도 이집트를 대표하는 건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과거 쿠푸왕의 지시로 세워진 기자의 대 피라미드다. 그리고 그 옆에는 쿠푸왕의 아들과 손자의 피라미드가 한데 모여 있으며 그들을 지키는 수호의 괴물 스핑크스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는 이집트의 유명한 관광명소로 알려진 대 피라미드,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당시 무시무시한 왕권의 희생물이 된 수많은 노동자의 혼이 서려있다.


 이집트를 찾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피라미드를 알현해야 할 듯한 유혹에 빠지며, 그 앞에 서면, 무슨 주문이라도 홀린 것처럼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지는 수천년 세월의 흔적에 고개를 떨구게 된다.

 

 

 

 


 피라미드란 고대 이집트의 국왕 및 왕족무덤의 한 형식으로, 현재 80여 개정도가 알려져 있으며, 나일강 일대, 문명의 발상지에 고루 흩어져 있다. 기독교는 유일신을 믿는 반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많은 신들을 믿었다. 그들은 우주 만물 하나하나에 모두 신이 있다고 믿었는데 그 중 태양신을 최고 신으로 섬겼다. 


또한 기독교가 부활과 생명의 종교인데 반해 고대 이집트인들이 믿는 종교는 가희 죽음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죽음 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믿음에 시신의 보존이 중요했고 또 무덤에는 살아서 누리던 모든 것(옷, 음식, 가구, 보물 등)들을 함께 넣었다. 그러다 보니 미라기술이 발달되었고 무덤의 크기가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집트에서는 왕위에 오르면 바로 무덤건축을 시작하였다 한다.

 

 

 

 


 무덤의 크기와 권력의 크기가 비례하는 것은 다른 고대 문명에서도 흔히 발견되었지만, 이집트의 경우는 그 규모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이 방대하며 견고하게 건축되어 기자에 있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고대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이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기자에는 이외에도 쿠푸왕의 아들 카프레와 카프레왕의 아들 멘카우레왕의 무덤과 여왕들의 무덤이 있다. 부대시설로 장례(시신에 향을 넣고 미라로 만드는)가 치러졌던 계곡신전과 시신(미라)을 옮기는 둑길, 죽은자에게 음식을 바쳤던 장례신전, 이 모든 것을 지키는 태양신을 상징하는 스핑크스가 있다.


 고대 세계 7대불가사의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불리는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중의 하나이다. 기원전 2600년경 세워진 이 건축물은 이집트 고왕국 파라오 쿠푸왕의 무덤이다. 구조높이는 147m이며, 사각형 모양의 돌 230만개를 쌓아 완공하는데 약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돌의 평균 무게는 2.5톤, 개중에는 15톤 이상 나가는 돌도 있다. 그 무겁고 많은 돌을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가져왔고, 거대한 무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당시 파라오에게 죽음은 영원한 휴식을 뜻하지 않았다. 피라미드 내부 석실에 있는 그림에서 보듯이 고대 이집트인은 하늘로 올라간 파라오가 밤과 시간을 다스린다고 여겼다. 고대 이집트인은 이런 생각을 피라미드에 고스란히 반영했다. 


 대 피라미드의 네 모서리는 정확하게 동서남북, 네 방향을 향한다. 오차도 거의 없다. 주목할 것은 쿠푸왕의 석실에 난 두 개의 통로가 피라미드 외벽까지 이어져있다. 고고학계에선 이를 공기 통로라고 여겼다. 이집트인이 무덤에 환기구멍을 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통로의 역할을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밀은 1964년 밝혀졌다. 북쪽 통로는 북극성을, 남쪽통로는 오리온 자리를 가리켰다. 당시 이집트인은 북극성을 모든 별의 중심이라 생각했고, 오리온 자리는 영혼의 부활을 관장하는 이집트 최고의 신인 오시리스라고 여겼다. 파라오가 죽어서 영원의 존재가 된다는 생각을 천문학과 건축학으로 나타낸 것이다.


 거대한 파라오의 무덤으로 지어졌고, 스핑크스가 굳건히 지키고 있는 피라미드 단지는 여행자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장소로 통하며, 고고학자들이 수세기 동안 건축물의 건설된 방법에 대해서 골머리를 썩게 만들었던 장소이며 이집트 여행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이다.


 물론 피라미드를 찾아가는 것이나 관람은 예상과 달리 순조로웠으나 바깥에서 외부모양을 구경하는 것은 120파운드, 내부는 300파운드를 주고 쿠푸왕의 피라미드 티켓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피라미드를 보러 왔으니 안에도 들어가 봐야겠지, 라는 심정으로 구입을 했는데 내부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피라미드는 무덤이고, 설령 유물이 함께 있었다 하더라도 이미 박물관으로 옮긴 뒤다. 허리를 구부려 기어서 올라간 내부에는 그저 커다란 방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실망스러웠다. 


 카이로 시내식당에서 점심은 그들이 자랑하는 비둘기 메뉴였다. 안내자에 의하면 그들에겐 결혼식 때나 먹는 귀한 음식이란다. 그런데 역시 음식문화 차이 때문인지 우리들에겐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 그 뒤부턴 시내에서 먹을 때는 우리가 잘 아는 멕도날드로 가기로 했다.


 오후에는 수세기에 걸처 수집되고 발굴된 10만점이 넘는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카이로 박물관(Egyptian Museum)을 관람했다. 고고학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에겐 유익한 곳이기는 하지만 사실 일반 시민들에겐 그저 그런 것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로 보고 지나기 일수다. 나의 관심을 끌었던 투탕카멘 유물전시관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룩소르에 있는 왕들의 계곡의 아주 작은 지하묘지에서 110kg의 황금관과 11kg의 황금마스크 등 5000점 이상의 귀중한 유물들이 발굴되어, 이 박물관을 가득 채워 놓았다. 투탕카멘은 기원전 1332년 9살에 18왕조 12대왕으로 등극하여, 이렇다 할 치적을 남기지 못한채, 9년 만인 18살에 피살 의혹을 받고 있는 파라오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무덤 발굴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가, 1922년 극적으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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