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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woolee
내 생애, 가장 용기있는 결정, Oh’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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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자는 용감한 사람이다”        

 


본보는 금주부터 킹스턴 동포 이진우씨의 이민수기를 연재합니다. 내용은 이씨가 올해 펴낸 저서 <내 생애, 가장 용기있는 결정, Oh’ Canada>를 전재하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애독을 바랍니다.-편집자 주    

 

 

 

 

 

 

 


서언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선택에 따른 각종 책임으로 이뤄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본인도 마냥 순탄치만 않았던 초, 중, 고교 생활을 거쳐 대학, ROTC, S그룹 15년 근속, 명퇴, 재취업 그리고 맨 나중 가장 비장한 마음으로 선택한 것이 캐나다 이민이었다.


굴곡진 삶의 궤적 중 이민의 선택은, 비록 시련과 고통이 따랐지만 이제껏 일궈낸 아이들의 밝은 미래와 가족과 함께 한 캐나다 이민자로서의 아픈 경험이 오히려 내 삶의 의미를 더욱 풍요롭게 해 주었다고 생각 되기에, 지극히 깊은 감사와 따뜻한 마음으로 관심 있는 분들께 희망의 소식으로 전해 드린다.


- 혹시 한번이라도 ‘캐나다 이민’을 꿈꿔 본 적이 있는 분들께는 캐나다 이민 생활의 환상을 깨뜨리는 실체적 도우미이고자,
- 16년 이민생활의 진솔한 경험과 ‘2 자녀, 교육비 제로’를 달성한 나만의 비결과 Know-how 를 함께 공유함과 동시에,    
- 여전히 마음 한구석, 호기심으로 남아 ‘캐나다 이민’은 어떤 삶일까? 하며 한번쯤 깊이 고민해 보신 분들께는 유익한 길라잡이가 되길 바라며,
- 특히, 대한민국 예비역 장교단(ROTC 외) 및 일반 예비역으로서 드높은 자긍심을 가진 분이라면, 그 인내와 용기만으로도 충분히 캐나다 이민생활을 잘 적응하고 이겨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어는, 정말 영어만큼은,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도전해야 함을 꼭 기억해 주십시오. 

 

제1장 꿈꾸는 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제1절 가장의 슬픈 뒷모습 - 이민을 결정하기까지


1. 강요된 희망 퇴직 – 경제 위기는 현재 진행형?  

 
아침, 회사 출근을 하니 사무실 분위기가 영 휑한 느낌이다. 어느 누구도 웃거나 소리 내어 말하는 이 없고, 무겁고 찬 공기가 주변을 짓 누른다. “왜 이렇지?”하고 알아 보려 했지만 답은 이미 게시판에 붙어 있었다. 


즉, 퇴사 권고문이 마침내 하달된 것이다. 이내 지점장이 불렀다. 내용인즉,


오후에 사업부장 면담이 잡혀있다고 한다. 심상찮은 그 뭔가가 느껴졌다. 결코 불안하지 않았고 그저 무덤덤 했다고 하면 새 하얀 거짓말 일런가.  

 
그 날 점심은 어떻게, 누구랑 해결했는지 기억나질 않지만, 사업 부장과의 면담 시간엔 늦지 않았다. K이사는 오히려, “오해 없기를 바란다”며 자신의 입장을 에둘러 변명하며 면담을 끝냈다. 10여 년 근속 인연을 끊는데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정말 “이럴 수가 있나,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고, 한참을 억울하다는 생각이 나를 삼켰다. 부질 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한땐 청운의 꿈과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던 옛 기억들이 머리 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불현듯 일전, 상사와의 회식연 다툼이 이런 결과를 불러왔나 싶어 잠깐 허망한 생각과 원망도 함께 일었다. 그 후로 내게 남은 건, 끝까지 버틸 것인가,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고 말 것인가 였다. 


그룹 회장은 “우린 함께 할 것이다”라고 했지만 전혀 영혼 없는 메아리였다. 아내는 많은 눈물을 보였지만 난 비굴하기 싫어 외로운 길을 택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그것은 정녕 탁월한 선택이었으며 인생에 다시 없는 축복의 의미로 남았다.


누군가가 떠남에는 2가지가 있다고 했다. 스스로 알아서 떠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다. 후자의 경우, 그것이 준비 없는 슬픈 이별로 온다고 해도 너무 상심하지 말고 의연하게 대처하며, 홀로 서는 굳건한 선택이 나을 듯 하다.


왜냐하면 세상은 둥글고, 떠남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선물일 수 있으니까…


최근 고국 뉴스에 노동자도, 지역경제도 그리고 일반 서민생활 전반에 걸쳐서 모두가 어렵다고 한다. 묘하게도 경제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가 보다…

 

2. 퇴직 후 첫 번째 결정, 귀농


사직서 제출은 호기 있게 하고 나왔지만, 바깥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하고 몇 날 며칠을 밤잠 설치며 고민했다. 그 결과 이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욕심 없이 살자”며 단순, 소박하게 정리했다. 


그 동안 직장생활 하며 마음 한 켠으로 동경해 왔던 시골 생활, 즉 귀농해서 농업과 관련된 사업을 통해 수입을 창출하자는 생각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그 당시 경제 위기 때문이었던지 한참 유행 했었던, 타조 농장을 직접 운영할 참이었다. 기본적으로 동물을 좋아했고 또 수입해야 하는 외래 종이라 직접 수입하면 원가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마침 인근 타조 농장 주인이 동기생이었고, 함께 해보자고 의기투합하여, 경기 여주 농촌 진흥청에서 주관한, 1주일 귀농 교육도 받았다. 그리고 전국에 산재한 타조 농장에 견학도 다녔는데, 전남 진도까지 방문해 경영 사례를 듣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교육 수료 후 마지막 실행 단계에서 난관에 부닥쳤다. 아이들 학교 전학문제가, 뭔가 불안하고 마음에 걸렸다. 특히나 아내의 반대가 심했다. 당시엔 농촌 대안학교 등이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았던 것도 이유였다.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국 가족의 동의와 아이들 교육 여건이 따르지 못한 귀농, 그것은 실현되지 못했다. 동기한테도 사정을 전했다. 많이 아쉬웠지만, 다른 생활 방편을 찾아야만 했다.

 

3. 아파트 상가 앞에서 – “좌절 할 수 없는 나”    


용기가 필요했다. 처음엔 무척 망설였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퇴직 후, 수입은 하나 없이 지출만 발생 하였고 또 아파트는 시세 하락으로 전세금을 되돌려 줘야 했던 상황은 정말 힘에 부쳤다. 수중에 남은 돈으로 작은 상가라도 얻어 장사 해보겠다는 생각은 아예 불가능했다. 


또한 당시 사회적 분위기 역시 부정적인 뉴스로 가득 차 있었다. 한보 철강 부도에 이어 삼미, 진로 등 대기업 17개 업체가 문을 닫았고 금융계에서는 경기은행 등의 지방은행 퇴출과 대우그룹의 파산 소식이 이어졌다. 위기감이 나라 전체를 뒤흔드는 가운데, 개인적으론 마음 속 깊이 내재된 자아 의식이 나를 불러냈다. 


“자넨, 한때 전방에서 목숨 걸고 근무했던 청년 장교 시절도 있지 않았나? 지금, 국가 경제 위기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가족을 지키는 데 있어, 무엇을 망설이고 두려워하는가”라고 준엄하게 꾸짖는 것 같았다.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마침 지인이 대단지 아파트 인근에서 사업을 하는 관계로 상가 번영회장을 통하여 목 좋은 자리를 확보했다. 생활형 프렌차이즈 사업, 가입비 및 비품 통틀어 몇 백 만원 정도였다. 감당하기에 큰 부담 없고 적정한 소규모 사업이었다. 예상은 바로 적중했다. 최소 비용으로 사람들이 왕래가 많은 곳에서 따뜻한 미소로 손님들을 친절하게 맞으니, 장사는 의외로 잘 되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대단한 용기”라며 격려해주었다. 프렌차이즈 지역대표는 우리 사례를 신규 점포 개발에 십분 활용하는 듯 했다. 전 대기업 간부 출신도 가맹점주라 소문 내며 영업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사회에 뿌리깊은, 체면 문화는 분명 개선되어야 할 점이라 생각 되었다. 


여하튼 당시 무리하게 빚 내지 않고, 잘 대처한 경험은 이민 생활을 극복하는데도 도움이 된 것 같다.

 

 4. 재취업, 신규사업팀 - 서울 무역 센타 근무    


 생활형 프렌차이즈 사업이 조기에 안정을 찾게 되자, 아내는 그것은 자신에게 맡기고 난 뭔가를 새로이 도전하라는 것이었다. 당장 대안은 없었지만 우선 경력직 간부사원 모집, 신문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몇 군데 보냈다. 


그리고 또 신문 광고에서 눈에 띈 것은 관세사 1차 시험이 3개월 후에 있었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S물산에서 경험한, 무역 지식과 관련이 있는 시험이었다. 시간이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왕에 뭔가 하나에 집중하는 게 나을 듯해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것 저것 잴 시간이 없었다. 곧장 학원 등록하고 수험서를 사 돌아 오면서 동네 인근에 독서실도 예약했다. 


기존 생활 방식을 하루 아침에 180도 바꿔야 했다. 지난 주까지 상가 앞에서 장사하다가 곧바로 수험생으로의 급 변신이었다. 뭔가 부족하고 준비가 덜 된 상태였지만 열심히 했다. 마치 학창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시험 결과는 1과목 실패였다. 아쉬웠다. 꼭 합격하고 말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어쨌던 결과는 반대였으니 변명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실망하고 있던 어느 하루, 낯선 우편물 한 통이 날아 들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경력직 서류 전형에 합격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어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정말 길고 어두운 동굴에서 본 한줄기 빛이었다. 아내에게 바로 알려주고 어느 때보다 면접에 보다 신중하고 철저히 대비했다.


그리고 지정된 날짜에 참석하여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면접에 임했다. 결과는 최종 합격이었고, 서울 무역센타에 있는 무역부 근무 조건을 제시했다. 약간의 망설임도 있었지만, 감사하게 받아 들이며 수락했다. 우리 가족의 미래를 다시 설계 할 수 있었던 “무역 경력직 간부사원”, 재취업 기회는 당시 아내가 권하여 그 다음날 신문 광고 보고 이력서 제출했던 한 곳이었다.


행운이 함께 했다. 지금 생각하면, 재취업은 가족들에게 시험 합격보다 더 큰 희망을 준 것 같다. 서울로 이사를 왔고, 아이들도 서울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면서 자기들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아내는 내 넉넉지 않은 봉급 메운다고 백화점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기도 했다. 퇴직 후 잃었던 가족의 웃음과 행복을 되찾은 시기였다.        

 

5. “햐, 이런 세상이 있었네” – 캐나다 이민 설명회


어느 공휴일이었다. 며칠 전 메모해 두었던 캐나다 이민 설명회 장소를 다시 확인했다. 집에서도 과히 멀지 않은 곳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지만 실상은 “캐나다 이민이 어떤 거지? 싶어 속으론 몹시 궁금했다. 도착하니 제법 사람들이 많이 붐볐고, 접수 후 자리에 앉아 강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40대 중반의 강사도 5년 전에, 캐나다로 이민을 했었는데, 특이 했던 것은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선호하는 밴쿠버와 토론토를 피해 자신은 몬트리올로 첫 정착을 했던 점이었다. 즉 영어권 도시로 정착한 경우, 자녀들이 성장해서 결국 영어와 한국어 밖에 못하나, 몬트리올의 경우는 연방 정부가 표방하는 이중언어 즉 영어와 불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게 되어, 취업에도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자녀들이 한국어를 익힌 후, 외국어 습득이 용이한 시기는 초등 3, 4학년부터 중 1, 2학년 정도가 가장 좋더라는 개인적 경험을 들려 주기도 했다. 여러 정황을 들어보니 “우리 가족 얘기다” 할 정도로 딱 들어맞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별 면담 후 자격도 아주 긍정적이라고 하여, 상당히 들떴던 기억이 난다. 본인이 신청한 영주권 분야는 개인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는 ‘독립 이민’이었는데, 이민성에서 요구하는 직종에 이력을 맞춰 주는 작업, 즉 과거에 경험한 해외 수출입 무역 경력을, 시장 분석가(Marketing Analyst)란 직종으로 변신(?)시켜 무사히 영주권을 받는데 성공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분명, 돈이 좀 들더라도 전문 기관에 의뢰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여러 관련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이 다소 복잡 하였지만, 그 모든 것이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가는 희망의 몸짓이라 생각했던지 크게 힘든 줄 모르고 진행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장담할 순 없지만 최소한 스스로 전력을 다해 노력하는 삶에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행운이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다. 물론 그것은 기약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정녕 숭고한 믿음이라 생각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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